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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의학, 현명한 치료] - 전나무숲 출판 / 신경외과전문의 김진목 저자
김 원장은 치열한 자기반성과 고백을 통해 현대의학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 그리고 대안을 과감히 제시했다. 그의 비판이 설득력을 더하는 이유는 의료인이라는 자기영역을 넘어 다각적이고 심도있게 현실을 지적함은 물론 환자 중심의 의료문화 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어서다.
현직의사에 의한 현대의학 비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게 사실. 외국저자의 번역서가 종종 소개되긴 했으나 김 원장처럼 국내 의사의 본격비판서가 출간된 건 극히 이례적이다.
김 원장은 만성병 환자였던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그동안의 고뇌를 털어놓으며 현대의학이 당면한 현실을 차갑게 들춰냈다. 그러면서 현대의학이 열린 마음으로 자연의학, 생활의학 등과 손잡아 통합의료를 지향할 때 의료문화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자신의 비판이 현대의학의 가치와 성과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인다. 현대의학의 한계와 모순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 끈을 온전히 놓아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의 방점은 현대의학 바로 보기와 현명한 이용자세에 찍혀 있다.
<<일문일답>>
-- 책을 쓰게 된 동기는?
▲ 내 자신이 만성병 환자였다. 레지던트 1년차 때 만성간염 보균자가 됐다. 중년에 들면서는 아토피로 고생했다. 자기 병 하나 못 고치는 의사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고, 현대의학의 한계로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 앞에서 수없이 절망했다. 그래서 한때 현대의학자의 길을 접기도 했다.
자연의학을 공부하면서 현대의학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음을 자각했다.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학에 힘입어 지병도 모두 치유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부끄러운 고백서이자 주류의학인 현대의학의 한계를 드러낸 반성문이다
-- 현대의학은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했다.
▲현대의학의 뿌리인 서양의학은 19세기 말 감염증을 발견하고 병원성 미생물을 없애는 약을 등장시키면서 세계 주류의학이 됐다. 첨단 검사장비와 수술법, 신약 등으로 빠르게 진보했고, 그 결과 병원들은 크게 번창했다.
그런데 한편에선 의학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만성병이 늘어났고, 약물 남용으로 내성을 가진 슈퍼 균도 등장했다. 과잉치료로 면역력은 저하됐으며 병원에서 병을 얻는 의원병 환자마저 늘어났다.
현대의학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몸, 병든 기관에 집착한다. '병자'는 보지 않고 '병'에만 매달리는 '인간' 중심이 아닌 '질병' 중심의 의학이다. 인체를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병든 부분에만 집중하는 치료는 많은 문제를 낳는다. 진통제를 먹어 통증은 줄어도 위장병을 얻거나, 항생제로 병원균은 제압해도 간질환을 얻거나, 암세포를 죽이느라 건강한 세포까지 파괴하는 모순이 나타나는 거다
-- 현대의학의 대표적 한계로 만성질환에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꼽았는데….
▲현대의학은 특정병인설을 토대로 질병에 대처해왔다. 특정한 원인이 특정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거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만성질환에 근본적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발병의 원인이 불확실하거나 복합적이어서다.
특히 비병원성 만성병에 현대의학은 증상완화에 매달린다. 근본치료가 아닌 대증요법에 주력하는 것이다. 증상의 이해가 부족한 환자는 불쾌한 증상이 가라앉으면 대부분 치료됐다고 착각하고, 의사도 돌팔이라고 불릴 게 두려워 열심히 증상을 억누른다.
증상을 억누르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치유작용을 억제당한 몸은 근본치유의 기회를 잃는다. 완치요법이 아니니 계속 증상완화제를 먹어야 하고, 결국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교란시켜 새로운 병을 부추기게 된다.
-- 약물요법의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양날의 칼'인 약은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19세기에 등장한 화학합성의약품은 감염성 질환에 큰 성과를 내면서 '병은 약으로 고친다'는 정형화한 의료 패턴을 뿌리내리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고정관념이 오늘날 질병치료를 방해함은 물론 '약으로 오히려 병을 얻는' 약원병(藥原病)까지 부추긴다. 약물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치유력이 약화됐고, 약물 부작용으로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부작용 천국이 된 현실을 잘 말해주는 게 항생제다. 항생제 남용은 이로운 균까지 없애 몸의 균형을 깬다. 인간과 자연은 상호의존관계인데, 이런 공존 원리를 무시하고 투쟁 원리로 공격적 치료를 한 결과 강한 독성과 번식력의 내성균을 불렀다.
한국은 항생제 내성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만큼 약품 공해가 심하다.
-- 수술이 남용돼 자연치유력을 약화시키고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고 했는데….
▲몸 전체의 유기적 관계를 외면해온 현대의학은 공격적 치료법을 발달시켰다. 수술도 그 중 하나다. 수술은 응급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을 구해 현대의학을 주류학으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수술 남용이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각종 기관 절제수술이 무분별할 정도로 남용돼 심각한 후유증을 불렀다. 우리 몸에서 수술로 제거해도 좋을 만큼 불필요한 기관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안전한 치료법을 먼저 시도하고 수술은 최후 방편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 수술 후유증이 질병 자체보다 더 나쁠 수 있으니 신중히 결정해야한다. 하지만 의사는 대부분 당장의 의학적 처치를 중시하므로 환자의 편안함과 미래의 안녕까지 고려치 않는다. 수술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 의료상업주의 비판이 많다.
▲오늘날 병원은 '이윤 추구'라는 분명한 경제적 목표 아래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과잉진료가 심해진다. 반복되는 검사, 불필요한 투약과 수술 등이 계속된다. 그냥 둬도 자연치유될 병에도 의학적 처치를 강조하며 과잉진료를 한다.
의료상업주의는 의료계 전반에 만연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수련받는 초보의사들도 과잉진료를 당연시하며 상업주의에 쉽게 빠져든다. 과잉진료가 더욱 문제인 것은 지나친 치료로 되려 병을 키우거나 만들어서다.
상업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평범한 일상까지 의학의 관리대상이 되는 '의료 일상화 시대'가 열렸다. 출산, 갱년기, 노화, 성생활 등 자연스레 일어나는 삶의 변화와 정상적인 행동양식이 병적 현상으로 바뀌면서 진단명이 붙고 값비싼 치료제가 이용되는 것이다
-- 예방의학 역시 과잉진료 성격이 크며 실효성에서 의문이라고 했는데….
▲현대의학이 질병으로 규정한 위험인자가 너무 많아 검사하면 환자로 진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든지 자연치유될 수 있는데도, 현대의학의 검사망에 걸려들면 약 처방이나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잉검사가 과잉진료를 낳는 거다.
우리 국민의 검사장비 이용률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병원의 장삿속과 의료소비자의 지나친 건강 염려가 맞물려 과잉 검진 열기를 더한다. 과잉검사를 부추기는 의학은 건강염려증을 키우는 결과도 빚는다.
오늘날 의학계는 검사방법만 빠르게 발전하고 치료에서는 발전이 더디다 보니, 질병을 조기발견해 그만큼 심리적 고통의 시간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 말기의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의학은 예전같으면 바로 사망할 응급 환자를 살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첨단 테크놀로지는 단순히 생존 시간을 연장하는 데 지나치게 이용되고 있다. 가망없는 말기환자에게 과도하게 적극적인 치료를 해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을 연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학은 생명을 살리는 데만 의미를 둔다. 어떻게 살아 있느냐보다 그저 살아 있으면 된다고 여긴다. 그 결과 임종환자들의 자연스런 죽음을 방해한다. 삶이 품위가 있어야 하듯이 죽음 또한 품위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도 갖가지 검사에 시달리고, 온 몸이 바늘에 찔린 채 고문처럼 목숨을 연장한다. 나아가 엄청난 의료비를 가족에게 떠안긴다. 생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맞게 해주는 게 가장 좋은 배려다
--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 왜 그런가.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가 현대의학이다. 누군가 큰 병에 걸리면 집안살림이 거덜나는 경우도 있다. 국민보건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도 폭발적으로 늘어 의료보험재정이 바닥을 드러낸다. 반면에 의료장비, 의약품을 생산하는 다국적 회사는 고수익을 올리고, 대형종합병원도 날로 번창한다.
현대의학이 주도하는 의료환경에서 의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완치요법이 아니라 증상만 완화시키는 증상완화법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근본 치유하는 게 아니어서 계속 병원에 가야 한다.
좋은 의술은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민도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을 만큼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의료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저비용 고효율의 치료다.
-- 의료가 과학화할수록 의사와 환자가 멀어진다는 지적이다. 의학이 휴머니즘을 잃고 있다는 얘긴데….
▲현대의학은 그동안 과학적 속성을 얻는 대신 인간적 모습을 잃었다. 환자와 의사의 인간관계가 상실된 거다. 너무 과학기술에 의존하다 보니,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해 치유의 힘을 배가시키는 의료의 본분을 잊게 됐다.
이런 현실은 과학기술이 의학의 중심이 되고 경제논리가 의료계를 지배하면서 생겼다. 병원이 이윤추구 기업이 되면서 의사와 환자의 따뜻한 동반관계는 사실상기대할 수 없게 됐다. 가능한 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이윤이 큰 치료를 해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의사는 의료 사업가로 변해가는 것이다.
오늘날 병원에선 환자와의 소통을 기계가 대신한다. 의사는 그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병든 부위를 볼 뿐이다. 소위 '진보'라는 최첨단 의학기술로 인해 의사는 계속 환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 의료계 문제를 제도적 차원에서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맞다. 소신있는 의사조차 과잉진료를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검사하고 투약하고 수술해야 공식의료행위로 인정하니 병원경영을 위해 불필요한 검사, 투약, 수술을 하게 된다.
의사의 역할도 단순한 처방의에서 건강 상담이나 생활 처방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상담료 등을 청구할 수 있게 제도가 달라지면 무리하지 않고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 다양성을 가로막는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양방, 한방을 제외한 의학이 인정되지 않는다. 대체의학이나 자연의학이 위험부담이 없고 치료효과가 높다
고 해도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다.
국민건강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의료대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임상을 통해 치료효과가 있는 의학은 모두 인정해야 한다. 의료다원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선진국에선 이미 통합의료로 가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대의학이 그 한계와 모순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나는 현대의학의 끈을 온전히 놓지 않고 있다. 현대의학이 이룩한 성과까지 무의미하다고 보지 않아서다.
이 순간에도 현대의학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온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하고 있다. 또 생사 갈림길에 선 급성질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선천적 장애로 삶을 포기한 어린 생명들에게 새 삶을 열어주고 있다. 상업주의가 만연한 의료환경에서도 묵묵히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의사들도 있다.
다만, 현대의학의 성과에 도취해 문제와 한계마저 외면한다면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결코 도움이 안된다. 무조건적 맹신은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현대의학이 뼈아픈 자각과 반성을 거치며 진정하게 진보해가길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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